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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소심쟁이야! 2009.05.22

이 소심쟁이야!

from 소소한 일상 2009. 5. 22. 23:45
 블로그와 홈페이지로만 보던 요리를 공부하시는 분, 손녀딸님의 전시회가 홍대, 제너럴 닥터에서 있었다.
작년에 남미를 여행하고 와서 얼마전 책을 내셨는데 그 때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의 전시회다.
이 분의 글을 읽고 있으면 다른 요리 블로그와는 다른, 이론의 탄탄함이 보인다.
그리고 이 분이 무척 성실하신 분일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난 영국에 다녀왔음에도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보지 못해서 영국전통음식(잉글리쉬 블랙퍼스트와 피쉬앤 칩스, 몇몇 고가의 음식들,과자,디저트류 제외)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이 분의 글을 요즘 다시금 찬찬히 읽어보니 내가 제대로 먹고 온 거 같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나름 슈퍼가는 것에 열광하며 많이 먹었는데...
사실 내가 먹는걸 올리면서 맛없다고 쓴 건 별로 없다. '영국음식 = 맛없는 거'가 머리가 박혀있어서 그런가..
아마도 세인즈브리에서 산 레토르트식의 영국 전통 음식(갈은 고기위에 잘게 부순 감자가 있는..)이 있었는데
그게 된통 실패하고나서 그 이후로 역시... 하게 되었던 거 같다.

이 분이 전시회를 연다고, 그리고 까페에 얼마동안은 머무를 거라는 공지를 보았을때부터 오늘까지
나는 기대에 부푼 나날들을 보냈다. 오늘은 렌즈를 껴야지~ 하면서.

방배에서 홍대... 가깝지는 않아. 금요일에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지하철.
그래도 좋았어. 그저 즐거웠지. 그 분을 직접 만나고 목소리를 듣고 사인을 받을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

까페에 들어가니 바로 그 분이 보였어. 사진 그대로의 모습으로.
근데 친구들이랑 같이 있으시더라구. 친구들이 많은 건 아니고 2명이었지만
난 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 사진들을 둘러보고... 그 쪽을 슬쩍 보다가 사진들을 또 보고..
사이즈가 커진 사진들을 보니 느낌이 더 강렬하게 와 닿았다.
강아지와 누워있는 사진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그 사진을 보면 영화 '안경'이 생각난다.)
이미 판매가 예약이 된 듯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자리에 돌아와 핸드폰에 있는 일정관리란에 끄적(?)이기 시작했지.

[' 8시 5분즈음 왔는데 22분인지금, 친구들과 있는 그 분에게 선뚯 말을 걸기가....
 엇. 사라지셨다. 화장실에 가셨나?
 혼자 있을 상태를 기다리기란 정말 어렵다. 화장실에 가서 손이나 씼는 척하며 말을 걸어볼까..
 아니야, '얘 모야?'하고 생각하면 어떻하지..(엉-)'

'아휴 지금은 30분. 9시까지만 까페에 있을거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 이 시간을 얼마나 고대했는데... 발이 떨어지질 않네'

'... 아흑 33분이야! '

'...41분. 친구분 중 한명이 내가 테이블에 올려놓은 책들을 발견했다.
난 딱 그 때에 손녀딸님 가까이 있던 고양이를 보고 있었는데 친구분들 2명 모두 나를 본다.
고양이를 계속 보는 척하면서 시선을 애써 모른척 했다.
테이블로 몸을 돌려 자몽에이드를 빨아마신다.
이미 쪽쪽 계속 먹어서 이제 자몽맛도 많이 옅어진 에이드를.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모든 피가 얼굴로 쏠리는거 같다.
이제.. 떄가 온거 같은데....'

'도착한지 40분후, 드디어 성공! ']


낮동안에 더워서 땀을 많이 흘려서 혹시 냄새라도 날까싶어 옆에 앉으시라는 권유에도 계속 미적거렸다.
(결국은 앉았지만)

난 처음엔 낯을 많이 가린다. 친해지면 괜찮지만.
영국에서나 외국에 여행할때에는 처음부터 나의 밝고 쾌활한 면을 맘껏 드러낼 수 있었다.
그 때 만난 사람들은 내가 정말 sociable 하다고들 했지. 그 사람들, 한국에서의 나의 모습을 보면 놀랄걸.
서로 외국인이기에 오히려 더 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적극적이지 않으면 언어가 늘지 않으니까.
솔직히 한국도 아니어서 다시 볼 확률도 얼마 안되어서 그렇게 변했던 것 같다.
나도 쾌활한 게 좋다고! 근데 왜 한국에선 움츠러드는걸까.

사인을 하고 나서 나는 더 있으라는 것도 역시나 쭈뼛거리며 사양했다.
사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 요리법 중에 '양념버터로 구운 버섯 샌드위치'는 부모님이 참 좋아하신다는 말.
* 요리책이 너무 새것 같아 안 본거 같다는 느낌이 드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포스트잇이 여기저기 붙어 있던 책이 있었으나 그건
  손녀딸님의 여행 계획중 런던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어학연수 가기전에 봐서
  1%의 가능성을 위해 사인을 받아볼려고 영국갈 떄 책을 가져갔다가 오라버니가 두고가라고 해서 두고오고
  새책을 며칠전 또 샀다고...
* 그 책에서 스콘을 클로티트 크림에 꼭 발라먹어보라고 해서 영국에 있을 떄 옆동네에 가서 먹어보니
  칼로리가 장난아니지만 정말 맛있었다고..

뭐, 이런 얘기들을 하고 싶었는데.. 난 너무 소심해. 흐읅.

여튼 그래도 직접 만나보고 사인도 받고.. 성공했다는 데에 의의를 둬야지.
돌아오는 길에 보슬비가 내렸어. 분위기는 추적거렸지만 난 아무래도 좋았다우.


손녀딸님
고마워요. 근래 몇주간, 특히 오늘, 덕분에 들뜬 하루였어요.

    꼬리말.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냥 바로 다가가면 될 것을 인사동을 괜히 돌다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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